2016. 11. 22. 17:28ㆍ건강하게 날씬하게
충분히 말라도 더 마르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비정상은 아닐까?
더 마른 몸이 행복을 약속할 거라고 믿는가?
누가 우리에게 다이어트를 권하는가.
적어도 30년 동안, 나는 말라도 너무 마른 여성이었다.
면접을 볼 때에는 일하다 쓰러지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곤 했고, 가끔은 44사이즈도 줄여 입었다.
말랐다는 말이 듣기 싫었다.
‘저체중을 위한 살찌는 법’ 같은 기획안을 종종 냈는데, 내자마자 폐기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최근 조금씩 살이 붙기 시작했다. 45kg을 넘은 적이 없었던 나는 정확히 1년 전보다 8kg 더 쪘다.
얼굴 살이 통통해져서 어려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건 좋았다.
반면, 허리 사이즈가 2인치씩 늘어 옷이 맞지 않거나, 사람들이 얼굴에 필러를 얼마나 맞은 거냐고 물어보는 일은 반갑지 않았지만. 그토록 살찌기를 원했음에도 막상 살이 찌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말라서 부럽다’는 말을 십수 년간 들어왔는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살이 찐건 좋았지만 뭔가 박탈당한 것 같은,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리다는 것처럼 마른 몸도 일종의 권력인 걸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우리 사회는 마른 몸을 추앙하고, 더 마르기를 소망한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서로 바꾼다.
저녁을 건너뛰고, 원 푸드 다이어트에 매진하고, 군살이 붙으면 운동하는 대신 지방 분해주사를 맞거나, 지방 흡입술을 마다하지 않는다. 비만 전문 병원 앞에서 몇 시간만 있어보라. 비만이 아닌 마른 사람들이 더 마르기 위해 병원 수술대 위에 눕는다.
미디어와 브랜드에도 책임이 있다.
패션 잡지와 브랜드 광고는 완벽한 몸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잡지를 보며 몸매에 대한 찬사를 내뿜는 당신, 하지만 정말 보정을 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몸매를 가진 연예인은 많지 않다(전문적 모델도 보정을 하고, 피부가 좋지 않은 뷰티 모델도 많다).
완벽한 상체를 가졌다고 해도 다리가 짧을 수 있다.
그러면 사진가는 다리를 길게 만든다.
너무 말라서 가슴이나 엉덩이가 없으면 볼륨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해서 팔다리는 가늘지만 나올 곳을 다 나온 작품 하나가 탄생하게 된다. 대표적인 마른 여배우인 키이라 나이틀리는 자신의 가슴을 커 보이게 보정한 향수 광고와 <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 포스터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쾌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녀는 작년 상반신 누드화보를 촬영하면서 ‘보정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그녀는 말했다. “여성의 몸이 전쟁터처럼 된 것은 사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피사체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사진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보정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바라는 몸매는 더 이상적으로 바뀌었다.
SNS는 이 현상에 더욱더 불을 지핀다. 미디어나 상업적 광고를 한 번쯤 의심하는 사람들도, 개인의 SNS는 의심하지 않는다.
블로그, 인스타그램에는 연예인보다 더 마르고 몸매 좋은 사람들과 상업적 활동을 위한 쇼핑몰 모델들이 넘쳐난다.
그들의 몸은 보이는 그대로일까? 사진 은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보정을 위한 앱은 얼마든지 있다.
다리를 늘이는 앱, 가슴골을 만드는 앱…. 이 앱과 각도, 하이힐 슈즈 등을 이용하면 누구나 모델처럼 보이는 사진을 게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은 실제로 마르고, 예쁠 거라고 믿는다.
마케터들이 판매를 위해 만든 용어는 이제 일상 깊숙이 침투해 강박을 만들어낸다.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꿀벅지’라는 별명으로 등장했을 때, 일부 미디어는 그 선정성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 이후, 꿀벅지는 ‘애플힙’을 만들고, 애플힙은 다시 ‘극세사 다리’와 ‘극세사 팔’을 양산했다.
가슴은 어떤가? 한때는 물방울 모양이 가장 아름다운 가슴으로 추앙받았다면 지금은 ‘버선코’ 모양의 가슴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용어는 아름다움을 정형화한다.
힙이 예뻐도 ‘애플힙’이 아니면 조금 부족한게 된다.
이것이 아닌 다른 건 아름답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런 용어는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바비 인형과 같다.
미국 정신건강치료센터에서 시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비 인형이 실제 여성이라면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다.
연구진들은 바비 인형의 허리와 비슷한 여성이 존재할 가능성은 24억분의 1이라고 말한다.
이 바비 인형처럼 여성이 극세사 다리이면서 꿀벅지이기는 힘들다.
가슴성형을 하지 않는 이상 4사이즈를 입으면서 C컵의 버선코 가슴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다리형이면서 가슴형이면서 엉덩이형인 여자일 확률은?
성형외과와 뷰티 시장은 이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다 가지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 결혼정보회사와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전국 25~39세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한민국 미혼남녀의 연애와 행복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의 외모에 만족한다고 답한 대한민국 여성의 비율은 37%에 불과했다.
인구대비 성형외과 수술률 1위를 달리는 데도 말이다.
반면 독일, 체코,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 여성들이 외모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70%를 웃돌았다.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과 대만은 50% 정도 비율은 되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외모 만족도는 이렇듯 매우 낮다.
영국 BBC 조사에 따르면 서울 인구 중 1 /3~1/5가량이 성형을 했다.
인구 대비 성형 수술을 거치는 사람은 서울이 압도적으로 1위다.
<뉴요커>는 지난달 서울의 성형수술에 대한 심층 취재 기사를 실었다. 의사는 그에게도 수술을 권했다.
기자는 서울에서는 외모도 ‘노력’의 대상이며, ‘경쟁’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지금도 어떤 환상을 좇아 끊임없이 예뻐지길 원한다.
더 예뻐지면, 더 마르면 행복해질 것인가. 12세에 데뷔한 이후 줄곧 거식증, 다이어트와 싸워온 모델 출신 여배우 포티아 드 로시는 말했다. “나는 가장 말랐을 때 가장 불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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